[뜻밖의 세계사] 환상의 아시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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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아시아를 찾아서 르네상스 이전,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시선

에스파냐 왕실을 움직였을지 모를 한 권의 책

아시아에 살고 있다고 전해진 이상한 괴수와 동물들. 당시 서구인들이 아시아에 대해 가졌던 인식을 보여준다. <출처: Herold, [Heydenwelt], 1554>

“동방의 부자나라”에 가고 싶었던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 물론 그의 항해에는 종교적ㆍ정치적ㆍ경제적 이유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그 아래에는 아시아에 값비싼 향료와 금은보화가 넘칠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바닷길로 분명 인도에 갈 수 있음을 확신했던 콜럼버스는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해 줄 자료와 후원자를 열심히 찾아 헤맸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포르투갈, 에스파냐 귀족, 에스파냐 왕과 왕비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퇴짜를 맞아야 했다.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과 이자벨 왕비는 아마도 콜럼버스의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기사 작위, 함대의 총사령관, 자신이 발견한 모든 땅을 자신의 후손에게 영구적으로 상속할 수 있는 권리 및 심지어 함대를 통해 거래될 물량의 10% 소유권까지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개월 뒤, 콜럼버스는 다시 한 번 왕과 왕비에게 후원을 요청했고 놀랍게도 이번에는 승낙이 떨어졌다. 왜 갑자기 왕과 왕비는 마음을 바꾼 것일까?

영국의 작가 가일스 밀턴(Giles Milton)은 “콜럼버스의 탐험이 기록되어 있는 스페인 해군 공식문서”에서 색다른 단서가 될 수 있는 대목을 찾았다. 이 문서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왕과 왕비 앞에 새로이 책 한 권을 보여주었는데, 그 책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책은 아주 최근의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가로질러 중국으로 항해하면 중국 동부 연안에 다다를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대서양 횡단을 믿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의 주장은 말 그대로 구원의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제목도 붙어있지 않았던 이 얇은 책은 영국의 존 맨더빌 경(Sir John Mandeville, ?-1360?)이 쓴 [기사 존 맨더빌 경의 여행기(The Voyage and Travels of Sir John Mandeville, Knight)](이하 [맨더빌 여행기])였다.

콜럼버스가 “인도의 풍요로움과 중국의 휘황찬란한 귀중품”에 매혹되어 아시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데에는 [동방견문록]같은 책들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치적ㆍ경제적ㆍ종교적 동기와 함께, 표면적이고 직접적으로 왕과 왕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밀턴의 추측대로라면, 대서양 항해의 근거를 찾아 결국 스페인 왕실을 설득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맨더빌의 역할도 크지 않았을까?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 [동방견문록]과 [맨더빌 여행기]는 공통적으로 아시아에 금은보화가 넘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히 맨더빌의 책은 아시아에 놀라운 동물들과 이상한 종족이 곳곳에 살고 있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몸은 사람이지만 얼굴이 개(犬)인 종족, 고환이 엄청나게 커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남자들, 자신을 범하는 남자를 잡아먹도록 뱃속에 뱀을 가진 여자들, 외눈박이 거인, 거대한 외다리 종족, 머리가 둘인 거위 등 이상하고 요상한 온갖 기형 및 기행 종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마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맨더빌 여행기]를 통해 서구인들이 가졌던 ‘놀라운 아시아’라는 환상의 뿌리를 찾아가 보고자 한다.

[맨더빌 여행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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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9년 판의 [맨더빌 여행기]에 실린 맨더빌의 모습.

1481년 아우구스부르크판에 실린 맨더빌의 모습.

[맨더빌 여행기]는 영국 세인트올번스의 기사 존 맨더빌 경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그는 1322년 성 미카엘의 날에 예루살렘 등의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고향을 떠나 34년이 지난 1356년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성지순례 외에도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 지역까지 여행하고 왔다고 주장하면서 [맨더빌 여행기]를 썼다고 전해진다. 이 책이 언제 처음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1357년에서 1371년 사이에 최초로 유통된 것으로 보인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은 주로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에 관한 여정을 담고 있고, 뒷부분은 인도, 중국,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 등의 인도네시아, 프레스터 존의 왕국, 성경의 지상낙원 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다. 맨더빌은 방문한 도시나 지역에 관해 먼저 설명하고, 그곳 주민의 생활이나 모습, 특산품(예를 들어 후추 등)도 서술하고 있다. 좀 더 앞 시대에 쓰여진 [동방견문록]과 한번 비교해보도록 하자. 마르코 폴로는 각 도시와 지역을 기술할 때 세 단계에 걸쳐 1. 방위와 거리, 2. 종교나 풍습을 포함한 주민들의 생활 및 특징, 3 그 지방의 특이한 동식물이나 광물을 기록했다. 많은 학자들은 [동방견문록]이 다른 여행기에 비해 기록자의 감상과 같은 주관적 서술이 상당 부분 배제되어 있는 편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맨더빌 여행기]는 방문지마다 일관된 형식 아래 서술하고 있지는 않으며, 개인적 감상도 풍부해서 보다 자유롭게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1360년 맨더빌이 사망할 때까지 [맨더빌 여행기]는 독일어, 체코어 등 거의 모든 유럽어로 번역되기에 이르렀고, 현재 유럽에는 300권이 넘는 [맨더빌 여행기]의 필사본이 남아 있다. 이는 남아 있는 [동방견문록]의 필사본과 비교했을 때 무려 4배 가까이 되는 숫자로, 가히 당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19세기 영국 정치가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의 아버지, 아이작 디즈레일리(Isac Disraeli)는 [맨더빌 여행기]의 인기에 대해 “[여행기]의 출판 부수는 계속 증가해서 거의 성경책 수준에 육박하였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성경]은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던가!

16세기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gh)은 “이 책을 연구한 뒤 언급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했으며, 대서양 북서 항로를 개척했던 마틴 프로비셔 경(Sir Martin Frobisher)은 [맨더빌 여행기] 덕분에 개척에 성공했음을 밝히는 등 이 책에 경의를 표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계속적으로 [맨더빌 여행기]에 적힌 대부분의 내용이 그 이전 시대에 동방으로 여행을 떠났던 자들의 여행기를 단순히 베꼈을 뿐이거나 여기에 다만 작가의 상상을 더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맨더빌 여행기]의 자료들이 14세기에 참고할 수 있었던 백과사전이나 여행기의 내용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맨더빌의 인생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는데, 여러 설 가운데는 장 드 부르고뉴(Johan de Bourgoyne)라는 이름으로 벨기에의 리에주에서 활동했던 의사였다는 내용도 있지만 사실로 여겨지지는 않고, 실제 맨더빌이 언제 태어났는지, 또한 실제로 여행을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맨더빌 여행기]를 작자미상의 작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자료들도 있다.

19세기 후반 이후 발간되어 현재 구할 수 있는 [맨더빌 여행기]에는 맨더빌의 서문 앞에 ‘맨더빌이 아시아에 대해 그 이전 시대에 작성된 자료를 각 챕터별로 얼마나 어떻게 베꼈는지’가 적나라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가 참고했다고 여겨지는 자료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카르피니의 존과 프라이어 오도릭, 로마의 플리니우스와 솔리누스 등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15가지가 넘는다. 그의 책뿐만 아니라, 존 맨더빌이라는 사람의 인생과 그의 여행까지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맨더빌이 그린 ‘놀라운 아시아’

14세기 후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필사본에 실린 그림. 개의 머리를 한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맨더빌 여행기]의 후반부 중에서도 특히 인도 지역과 자바 섬 및 수마트라 섬 등의 인도네시아 지역으로 넘어가면, 기형적인 동물과 이상한 종족으로 가득한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인도의 안다만 군도는 가히 기형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섬에는 “개처럼 생긴 머리를 가진 여인, 머리가 둘인 거위, 거대한 달팽이를 비롯해 심지어는 고환이 엄청나게 커 무릎까지 내려오는 남자들”이 돌아다닌다. 또한 사람들은 입이 없어서 갈대 잎 등을 말아서 음식을 빨아먹고, 원숭이처럼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손으로 걸어 다니며 나무에도 쉽게 오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섬의 남자와 여자는 하운드 개의 머리를 가졌는데……이해력이 좋다. 그리고 소를 신으로 숭배한다…….”

그런데 ‘비교적’ 서술자의 주관적 감정을 절제했다고 평가받는 [동방견문록]에서도 이와 유사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책에는 [맨더빌 여행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괴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지만, 안다만 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와 이와 눈이 개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들의 머리는 정말로 커다란 마스티프 개와 비슷하게 생겼다.” 어떻게 두 사람이 이런 똑같은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사실 두 사람의 상상 저 밑에는, 아시아를 이렇게 인식해 온 서구의 오랜 문화적 흐름이 있다.

‘놀라운 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인식, 그 뿌리를 찾아서

현재 남아 있은 자료 중 아시아(인도를 포함한 그 동쪽)에 대해 최초로 언급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헤로도토스(Hērŏdŏtus Hălĭcarnassensis, 기원전 480년경~420년경)의 [역사(Historíai)]이다. 그런데 그는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아시아에는 인디아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고”있고 “인디아 동쪽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그곳이 어떤 나라인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고 언급한 대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인도를 포함한 그 동쪽 지역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에 환상적인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라시아 지역인 스키타이의 북쪽, 즉 ‘잇세도네스 북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아리스마포이라고 불리는 외눈박이 부족과 황금을 지키는 그륍스들이 살고 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인도를 포함한 동쪽 지역에 대해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아시아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의 보다 직접적이고 중요한 기원으로 다른 인물을 꼽는다. 중세의 괴수 이미지를 연구한 독일의 미술사가 루돌프 뷔트코버(Rudolf Wittkower)는 그리스의 의사이자 역사가였던 크테시아스(Ktesias, B.C 416~?)와 역사가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메가스테네스(Megasthenes, BC 350경~290경)의 저작을 환상적이고 놀라운 이야기의 근원으로 지적했다. 크테시아스는 인도를 다녀온 페르시아인들의 기록과 페르시아 왕실을 방문했던 인도의 상인 및 사절의 기록을 토대로 인도에 관한 저작을 남겼고, 메가스테네스는 소아시아의 셀레우코스 1세가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 찬드라굽타에게 보낸 사절단으로서 인도에 갔다. 그는 4권으로 된 인도 기행문 [인도지(India)]도 남겼다. 크테시아스의 저작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로 쳐들어갈 때까지의 인도 역사에 대한 유일한 체계적인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고, 메가스테네스의 글도 “그때까지 그리스 세계에 알려져 있던 인도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자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저작이 ‘놀라운 이야기’의 근원으로 지목된 이유는 뭘까. 우선, 크테시아스의 책에는 인도에 다이아와 금이 가득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한 인도에는 매우 큰 하나의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고 뜨거운 햇빛 아래에선 이 거대한 발을 우산으로도 사용한다는 종족(sciapodes), 개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지고 개처럼 짓는 종족(cynocephali), 어깨 사이에 얼굴이 있어서 머리가 없는 종족이 있다. 이 외에도 인도에는 거인이 많고, 사람의 얼굴에 사자의 몸, 전갈의 꼬리를 가진 종족 등도 있다고 적혀 있다.

한편 메가스테네스의 글은 인도의 지리, 인구, 사회정치적 기구, 생산품, 역사 및 종교까지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빙성 있는 자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역시 이미 언급되었던 아시아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들을 반복”했고 심지어 “상당한 양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덧붙였다.” 박쥐같이 날개를 가진 뱀, 엄청난 규모의 날개 달린 전갈, 발꿈치가 앞에 있고 발가락이 뒤로 가 있는 종족, 입이 없어서 고기를 태우는 냄새나 과일 및 꽃의 향을 맡으며 살아가는 종족, 개의 귀를 가진 사람들과 이마에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 금을 파서 나르는 개미들 등 책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1582년판. ‘세계의 문물과 풍속에 관한 정보의 집대성’이라 평가되는 이 책 역시 아시아와 관련해서는 외눈 종족, 외다리 종족 등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이런 식의 묘사는 로마시대의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 24년(?)~79년)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그의 37권짜리 [박물지(Natural History)]는 “세계 문물과 풍속에 관한 정보의 집대성”이라 평가된다. 그 중 7권은 인간에 관해 기술되어 있는데, 특히 아시아에 대한 내용에서 이전 시대에 기록된 놀라운 아시아에 관한 이야기들과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마 중앙에 외눈이 박혀 있다는 외눈 종족(Arimaspi), 마안으로 째려보아 살인한다는 종족(Iliria) 등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또한 거대한 외다리 종족에 관한 설명도 찾을 수 있다. “그 종족은 하나의 발을 가졌지만, 놀라운 속도로 뛸 수 있다. 스키아포다스라고 하는 그 생명체는 보통 더운 날씨에는 바닥에 드러누워 자신의 큰 발로 그늘을 만들고 그것으로 태양을 피한다고 한다.”1)

크테시아스와 메가스테네스의 저작에 실려 있던 내용들은 거의 1500년이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히고 필사되었다.” 물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저작에 들어있던 내용은 중세 후기의 베스트셀러였던 [맨더빌 여행기]과 [동방견문록]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맨더빌 여행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괴수와 기형 동물들, 그리고 [동방견문록]에 묘사된 금을 나르는 개미 이야기 등은 모두 이런 자료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이러한 신비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은 중세 삽화가들의 영감을 자극했고, 그림으로 그려져 책 사이에 삽입되었다. 특히 개의 머리를 한 사람들, 거대한 외다리 종족, 머리 없이 얼굴이 가슴에 있는 종족 등의 그림은 현재 남아 있는 필사본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아마도 그만큼 인기 있는 소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삽화로 그려져 중세의 여행기나 동물지에 실렸고, 그 삽화나 그림들은 오늘날의 사진처럼 독자들의 시각을 충족시켜 주었다. 물론 실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독자에게는 ‘백문이 불여일견’의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이상한 종족이 사는 재화가 흘러넘치는 곳

1493년에 그려진 외다리 종족 삽화. 르네상스 이전 중세의 사람들에게 멀고 먼 아시아는 끊이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맨더빌 여행기]를 토대로, 서구의 사람들이 아시아를 바라보고 이해했던 여러 가지 인식의 틀 가운데 ‘놀라운 아시아’의 기원을 찾아가 보았다. 르네상스 이전, 대부분의 서구인들에게 중국과 인도는 ‘이상한 종족과 동식물이 사는 곳’이면서 ‘재화가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아시아에 대해 이렇게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단길 등을 오가던 상인들이나 사절단은 비교적 실질적 정보 및 사료를 남겼으니 말이다. [동방견문록]도 상당 부분 그런 정보를 전하고 있는 책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즐길 거리도 별로 없던 중세,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이렇게 놀랍고도 환상적인 아시아 이야기는 얼마나 재미나고 흥미로운 소재였을까? 아시아는 너무 멀어서 그곳의 실상을 제대로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아무도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누군가 삽화가 그려진 책을 가지고 있었다면, 함께 그 그림을 둘러싸고 ‘사실이네’ 혹은 ‘그럴 리가 없네’하며 한바탕 진지한 토론의 장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콜럼버스 또한 최초엔,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참고문헌

가일스 밀턴, 이영찬 옮김, [수수께끼의 기사], 생각의 나무, 2003; 김성근, [교양으로 읽는 서양과학사], 안티쿠스, 2009; 김호동 옮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사계절, 2004; 로빈 브라운, 최소영 옮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른아침, 2005; 설혜심, [온천의 문화사], 한길사, 2001; 주경철, [문명과 바다], 산처럼, 2010;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사], 숲, 2009; Andrew Fleck, “Here, There, and In between: Representing Difference in the “Travels” of Sir John Mandeville”, Studies in Philology, Vol. 97, No. 4 (Autumn, 2000), pp. 379-400; David C. Lindberg, [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al context], prehistory to A.D. 1450,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7; John Mandeviile, Arthur Layard ed., Voyages and travels of Sir John Mandeville, D. Appleton and Co. c1898; John Mandeville, C,W,R,D. Moseley trans., The Travels of Sir John Mandeville, Penguin Books, 1983; Caroline Walker Bynum, Wonders, The American Historical Review, Vol. 102, No. 1, 1997, pp. 1-2;Rudolf Wittkower, Marvels of The East : A Study in the History of Monsters, Journal of the Warburg and Courtauld Institutes, Vol. 5, 1942, pp. 159-197; Sebastian I. Sobecki, “Mandeville’s Thought of the Limit: The Discourse of Similarity and Difference in “The Travels of Sir John Mandeville””, The Review of English Studies, New Series, Vol. 53, No. 211 (Aug., 2002), pp. 329-343

김지혜
글쓴이 김지혜는 문화사 전반에 관심이 많다. 연세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문화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석사논문으로 <19세기 후반 영국 정기간행물에 나타난 남성 히스테리>를 제출한 이후, 남성사 및 젠더사 등을 문화사적 관점으로 읽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쉽고 대중적이며 재미있는 역사 쓰기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으며, 이런 관심사의 연장선상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 [르네상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2010)를 썼다.
발행2013.05.3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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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스키아포다스(sciapodes)는 ‘그림자발’이라는 뜻이다. 외다리로 더운 날 쉬고 있던 이 종족에 대한 설명은, 요가를 수행하던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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